외출

[스크랩] 외출.......소설로 보다...... 열 여섯 번째 이야기.........

중독1106 2008. 3. 24. 10:49

 

  오래된 금기를 넘어선 것처럼 서영은 그날 아침 바다에 대한 선입견 몇 가지를 깼다.

그동안은 파도 소리가 ' 철썩, 처얼썩' 하는 줄 알았다.

책에 묘사되어 있는 표현이나, 라디오에서 들리는 음향이 그랬기 때문에 그렇게

믿고 있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수와 함께 해변을 걸으며 실제로 듣는 파도 소리는 그게 아니었다.

뭐랄까, 아주 많은 사람들이 폐쇄된 공간에 모여 한꺼번에 웅성거리는 소리 같다고나 할까.

파도 소리는 ' 솨아아아.........' 하는 것 같기도 했고 ' 차르르르...........' 하는 것 같기도 했다.

 

  새벽 바닷가가 결코 고요하거나 한적하지 않다는 것도 알았다.

미역이나 다시마를 건지는 사람, 태양을 기다리는 듯 미동 없이 바다를 향해 서 있는 사람들,

발목에 모래주머니를 차고 백사장을 달리는 청소년들이 북적이고 있었다.

서영과 인수처럼 특별한 용건 없이 그저 바닷가를 걷는 연인들도 제법 보였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동해에서 떠오르는 태양이 그동안 사진에서 보았던 일출 광경과 다르다는 것도 알았다.

사진에서 본 일출은 수평선 위로 붉고 둥근 쟁반 같은 태양이 오롯이 떠올라 있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본 일출은 경계가 모호한 수평선에서 슬그머니, 그 형태를 분명하게 드러내지

않으면서 서서히 대기를 밝히는 일출이었다.

 

  " 구름이 끼어서 그래요. 사진에서 보는 것 같은 일출을 볼 수 있는 날은 드물대요."

 

  인수의 설명에 서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백에서 휴대전화기를 꺼냈다.

여러 가지 엉터리 선입견이 깨진 현장을, 무엇보다 금기를 넘어선 그 다음 날의 아무렇지 않음을

사진에 담아두고 싶었다.

이 해변과, 충만함과, 현실적인 어떤 것.

서영은 휴대전화기의 카메라 기능을 켠 다음 팔을 멀리 뻗으며 인수에게 제안했다.

 

  " 우리 사진 찍어요."

 

  하필이면 그 순간이었다.

그 해변에는 다시 네 사람이 서 있었다.

그들이 사진 동아리였다는 사실이 떠오르고, 그들도 이런 마음으로 사진을 찍었겠구나 싶었고,

기어이 디지털 카메라의 동영상 화면이 눈앞으로 지나갔다.

서영은 들어올렸던 팔을 늘어뜨렸다. 인수는 서영의 팔을 잡아 다시 들어올리도록 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 괜찮아요. 찍어요."

 

  그는 웃고 있었다. 맑은 낯빛으로, 서영이 느끼는 그 모든 불편한 감정과는 무관한 사람처럼,

이제 와 왜 그것이 문제가 되느냐고 묻는 태도로 서영을 바라보았다.

서영은 인수가 하는 것처럼 했다. 맑은 낯빛으로, 아무런 생각이 없는 사람처럼,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것만이 전부라고 믿는 태도로 사진을 찍었다. 동해 일출을 배경으로, 인수와 머리를

맞댄 자세로.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사진을 휴대전화기에 저장하면서 서영은 비로소 그동안 자신들이 무엇을 했는지 알아차렸다.

그들처럼 한 것이다. 그들처럼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았고, 그들처럼 드라이브를 했고, 그들처럼

알몸인 어깨에 얼굴을 비비고, 그들처럼 사진을 찍었다. 한 치의 빈틈도 없이 모든 행위가 일치했다.

 

  서영은 문득 맥이 빠졌다. 사랑이라고 믿었던 이 모든 행위 역시 넓은 의미의 복수였을까.

사랑이 원래 그렇게 창조적이지 못하고 지리멸렬한 행위인 걸까. 아무리 고유한 사랑이라도

이미 수천 년 전부터 있어 왔던 행위이며, 아무리 순연한 사랑이라고 해도 그 속에 잡다한 감정들이

섞여 있게 마련인 걸까. 파도가, 비슷비슷하게 생긴 파도가 끊임없이 밀려왔다 밀려가는 것을 보며

서영은 공연히 인수의 손을 잡았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그들도 이렇게 사랑했겠구나.......... 병실에 누워 있는 두 사람을 떠올려보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바로 그 순간, 그들을 떠올리는 일이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았다. 상실감이나 열패감, 혹은 자기

비하감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무를 보며 나무구나.......... 바다를 보며 바다구나..........

말하듯이 그들도 그렇게 사랑했겠구나......... 싶었다.

 

  그들도 이렇게 사랑했겠구나........... 다시 한 번 되뇌일 때 서영은 비로소 알 것 같았다.

마음이 그 지점에 도달하기 위해 그들을 따라 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350년 된 회화나무나

5천 년 된 암각화는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세상에는 이미 새로운 일이 없으며,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으며, 해서는 안 되는 일도 별반 없다는 것을.

서영은 인수와 함께 팔을 앞뒤로 크게 흔들며 해변을 걸었다. 긴 해변끝에 도달했을 때는

몸도 마음도 많이 가벼워져 있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그날 서영은 종일토록 인수와 함께 있었다. 해변 끝에 도착하여 근처 식당에서 맛있는 미역국을

곁들인 식사를 했다. 함께 병원으로 가서 각자 배우자를 돌본 후 간병인에게 특별히 부탁하고

점심때쯤 병실을 나섰다. 병원 밖에서 만나 점심 식사를 한 다음 오후에는 영화관에 갔다.

관객이 거의 없는 영화관에서 스케일이 크고 특수 효과가 화려한 외화를 한 편 보고 나와 시장에

들러 과일을 샀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과일을 들고 모텔로 돌아왔을 때 서영은 인수가 보내는 단 한 번의 눈빛을 따라 그의 방으로

함께 들어갔다. 그 방도 서영의 방과 똑같은 구조로 되어 있었다. 인수가 냉장고에 과일을 정리하는

동안 서영은 테이블에 앉았다. 그는 접시에 사과 두 알을 담아 테이블 위에 놓다가 테이블 위에 놓인

메모지 한 장을 황급히 집어 들었다. 그는 그것을 수첩 사이에 끼워 놓은 후 아무 일 아니라는 낯빛을

하며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그러나 서영은 이미 메모지에서 낯익은 글씨를 보고 말았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냉장고에 물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그 메모지는 인수가 건넨 수천 마디의 말보다 더 강렬하게 서영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맞은편에 앉아 있는 인수가 문득 사랑스러웠다. 아이처럼, 그를 안아주고

싶었다. 서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인수 앞으로 다가가 그의 머리를 가슴에 안았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하필이면 그때 방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틀림없이 인수의 철제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였다.

인수는 서영의 허리를 감싸 안은 채 고개만 현관 쪽으로 향하며 " 누구세요?" 라고 물었다.

 

  " 김서방, 날세."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서영은 그 두 마디 언어가 그토록 힘이 셀 줄은 몰랐다. 그 말은 그들이 나누던 사랑이 얼마나

부실한 기반 위에 서 있었는지 보여주었고, 그들 두 사람을 의자에서 튕겨 일어나게 만들었다.

심지어 의젓해 보이던 인수를 비겁하고 초조한 사람처럼 보이게 했다. 인수는 서영의 겉옷과

손가방을 집어 들고 서영을 화장실로 안내했다. 서영이 화장실에 들어가자 문간의 신발도

집어 건넸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화장실에 서서 서영은 인수가 문을 여는 소리, 장인이 " 잘 지냈나?" 라고 물으며 문 안으로

들어서는 소리, 인수가 식사하러 갈 참이었다면서 장인을 밖으로 모시고 나가는 소리를 들었다.

문이 닫히기 전 장인이라는 사람이 들뜬 목소리로 " 수진이 얼굴이 많이 좋아졌어" 라고 말하는

소리도 들렸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좁은 화장실에 겉옷과 구두를 들고 서 있을 때 서영은 소름 끼치도록 현실을 깨달았다.

여기가 끝이구나 싶었다. 이만하면 됐다 싶기도 했다. 그들처럼 해보았고, 그들처럼 느껴보았고,

그들처럼 경계를 넘어보았다. 금기조차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던 순간을 오래 기억하면 될 것이다.

이제 화장실 문을 열고, 방문을 열고, 복도를 가로질러.......... 그렇게 인수의 생에서 걸어 나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화장실의 좁은 공간과 너무 환한 빛이 견딜 만했다.

 

 

 

  서영은 외출 준비를 하다가 거울에 비친 몸을 보며 잠시 동작을 멈추었다. " 당신 몸은 몸 이상이에요."

그 말이 인수의 어감과 어조 그대로 귓전에서 울렸다. 서영은 새삼스럽게 자신의 몸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어깨에서 팔로 흐르는 선, 배꼽을 중심으로 둥그스름한 배, 공기를 엎어놓은 듯한 반원형 가슴..........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서영은 환한 빛 아래서 자신의 몸을 그토록 세밀히 보는 일이 처음이었다. 또한 처음으로 자신의

눈으로 자신의 몸을 보고 있었다. 그동안은 늘 타인의 시선이 되어 자신의 몸을 보았다. 몇 개의 숫자로

규격화된 아름다움의 기준에 부합하고 싶어서 식사량을 조절하고 체형을 잘 살릴 수 있는 옷을 골랐다.

그러나 인수의 말 한마디에 모든 것이 변했다.

 

  " 몸에서 음악 소리가 나고, 소리에서 색깔이 나오고, 그 색에서 다시 향기가 퍼져요."

 

  서영은 어깨며 가슴에 손을 대고 인수의 말을 이해해보려 애썼다.

세상에 통용되는 육체의 아름다움에 대한 모든 기준이 날아가고 오직 인수의 시선, 인수의 언어만

남았다. 사랑이란 거대한 세상이 한 사람으로 수렴되거나 축소되는 일인가 싶었다. 상대방의 정서,

취향, 기질에 흡수 합병되어 제3의 인물로 다시 태어나는 일 같기도 했다.

 

  외출 준비를 끝낸 후 서영은 한사코 들떠오르려는 기분을 조심스럽게 누르며 모텔을 나섰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인수는 모텔 앞 공터 오동나무 그늘 아래 주차시키고 있다가 서영이 다가가자 손을 들어 보였다.

그의 얼굴에서 가득 번지는 웃음이 봄빛처럼 난반사했다. 서영이 차에 타자 그는 우선 차를 출발시켰다.

그역시 기분이 많이 들뜬 듯 보였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 어디로 가는 거예요?"

 

  " 저기요."

 

  인수가 손가락을 들어 허공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니, 허공의 도로 표지판을 가리키고 있었다.

언젠가 서영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 저기 한번 가볼래요?" 라고 물었던 바로 환선굴 표지였다.

서영이 돌아보자 인수는 빙긋이 웃었다.

 

  " 저 표지판만 잘 따라가면 도착하겠죠?"

 

  입가에 웃음이 물려 볼살이 뒤로 밀렸다. 세상에 봄이 오고 인수에게도 무슨 일인가가 일어나고

있었다. 그의 표현 방식대로 하자면 들판에 칠해지는 노란색과 연두색이 그의 가슴에 물든 것 같았다.

바람이 부드러워지고 공기가 맑아진 것처럼 인수의 낯빛도 밝아지고 행동마저 가벼워 보였다.

 

  서영은 생을 새롭게 선물받은 것 같았다. 그동안 세상에 존재했던 모든 사물들이 새로운 모습으로

포장되어 배달되었다. 아침나무와 정오의 강물, 오후 누각과 저녁의 암벽이 모두 새것이었다.

사물 하나하나가 새롭고 소중해 보이듯이 자신에 대해서도 꼭 그러했다. 무엇보다도 몸을 새롭게

선물받은 것 같았고, 그 몸에 대한 사랑을 갖게 되었다. 근거 모를 자신감이나 희열이 끝없이 솟아올랐다.

서영은 자기를 사랑한다는 말의 긍정적 의미가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좁은 화장실에 갇혀 있을 때는 거기가 끝이라고 생각했다. 화장실 문을 열고 나가, 다시 현관문을

열고 나가면 그것으로 영원히 인수의 생에서 걸어 나가게 되는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서영이 화장실 문을 열고 나가기 전에 먼저 인수가 그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그는 다급하게 문을 연 기세와는 달리, 서영의 낯빛을 살피며 문간에 잠시 서 있었고, 그런 다음

또다시 급하게 다가와 서영을 안았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을 때, 그의 떨림이 온몸으로 감지될 때, 서영은 그때 알았다.

그를 놓을 수 없음을, 이 사랑의 영원성을 약속받지 못하더라도 당분간은 그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리고 또 알았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1분도 안 되는 시간 속에서 지옥과 천국 사이를 오가는 감정이 사랑이라는 것을.

사랑이 원래 그렇게 감정 동요가 심하고, 엎치락 뒤치락하고, 불안한 것임을.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첨부파일 12SpringComes[1]..(With사진속의바다-대사3),(ⅡStoryFrom_AprilSnow).wma

 

 

 

 

 

  봄을 좋아 하는 서영과

  겨울을 좋아 하는 인수...

  그리고... 눈을 좋아하는 서영...

  그런 서영을 보며...

  봄에 눈이 내려야 겠다고 하는....인수...

 

 

 

  그런 일이 있을수....있을 까요?.............

 

 

 

 

 

출처 : 배 용 준 과 배 토 미 사
글쓴이 : 유니크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