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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기와 수진의 운전 면허증을 건네자 서비스 센터 직원은 컴퓨터에서 수진의 정보를
조회했다. 그는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아 고개를 들고 시선으로 인수를 찾았다.
" 비밀번호는 1026 입니다."
그것은 지난 밤 인수가 눌러본 어떤 숫자와도 무관했다. 인수가 연상할 만한 범주에는
들어 있지 않은 숫자이기도 했다.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남자와 관련된 게 아닐까
생각하자 열패감 같은 것이 일었다. 그러나 서비스 센터를 나서며 찬바람을 맞는 순간
그 숫자가 어쩌면 1979년에 있었던 저 역사적인 사건에서 가져온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뒤늦게 안도감이 일면서 입가에 절로 웃음이 물렸다. 수진이다운 유쾌함이
인수의 마음 가득 번지는 듯했다.
인수는 잠시 공연장 앞을 거닐며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전화기 발신 번호 중에서 괴물을
만나더라도, 수신된 문자 메시지 속에서 악마를 만나더라도 절대 놀라지 말 것.
만에 하나 혹시라도 그런 일이 있더라도 수진의 말을 직접 듣기 전까지는 함부로 판단하거나
의심하지 말 것.
인수는 걸음을 멈추고 심호흡을 한 다음 전화기를 열었다. 비밀번호를 누르자 초기화면이 떴다.
수진은 전화기 초기화면에 열대 섬의 해변 사진을 저장해놓고 있었다. 인수와 신혼여행을 갔던
푸켓 해안은 아닌 것 같았다. 인수는 전화기의 발신 버튼을 눌러보았다.
'최근 통화기록[1/300]' 이라는 표시가 뜨면서 전화번호들이 나열 되었다. 낯선 번호들과
개인 이름, 회사 명칭이 보였다. 그중 '윤경' 이라고 표시된 이름이 자주 눈에 띄었다.
인수는 마치 거짓말처럼 '윤경' 이라는 이름이 함께 사고당한 윤경호의 앞부분 두 글자일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살다 보면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되는 사실들이 있었다.
인수는 잠시 그 자세로 서서 심호흡을 한 다음 이번에는 메시지 관리 버튼을 눌렀다.
컬러 메일, 수신 메시지, 발신 메시지 등의 표시가 화면에 떠올랐다. 그중에서 수신 메시지 버튼을
눌렀다. 문자 사서함에 편지가 74통 보관되어 있다는 표시가 떴다. 문자 사서함을 여니 화면에
표시되는 일곱 개의 메시지 중 세 개가 '윤경' 이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인수는 숨도 쉬지 않고
'윤경' 이라는 이름이 보낸 가장 위쪽의 편지를 열었다.
내일 만남에 대비해서 몸과 맘 준비 중. 많이 보고 싶다.
인수는 그 자리에 주저앉지 않기 위해 다리에 힘을 주어야 했다. 예상하고 또 예상한 일이었다.
최악의 사태에 대해서도 마음의 준비를 했다. 수진의 입으로 직접 듣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의심하거나 판단하지 않겠다고 다짐도 했다. 그러나 머릿속으로 상상했던 것과, 그것이
현실이 되어 눈앞에 펼쳐져 있는 상황은 사뭇 달랐다. 유추하거나 판단할 것도 없이 자명한
사실 앞에서 머릿속이 하얗게 탈색되었다.
" 나 없는 동안 바람피지 마."
수진의 말이 비수가 되어 등에 박혔다. 그동안은 수진의 그 말을 지극한 애정 표현이라고
받아들였다. 애정보다 더 짙은 소유욕의 한 면을 드러내는 거라 믿으며 흡족해했다.
그러나 같은 말이 이제는 거짓이나 자기 방어였음을 알게 되었다.
" 혹시 피우려면 절대로 내가 모르게 해."
이어지던 그 말은 아마도 자기 변명 같은 것이었으리라. 내가 바람을 피우긴 하지만
절대로 당신이 모르도록 할게. 인수는 겨울 거리에 한동안 서 있었다. 삭풍이 옷자락을
흔들며 지나가고 햇살이 찌르듯 빙글거리며 몰려들었다. 머리 쪽으로 다시 열기가 몰리면서
머리통이 부풀어오른 것 같았다. 수진이 휴가 중이었으며, 남자와 동행이었으며, 음주 상태
였다는 것....... 그것들이 한꺼번에 환기되면서 아예 수진의 존재 전체가 거짓과 위선 덩어리쯤으로
여겨졌다. 마음이, 사람의 마음이 그토록 순식간에 뒤집힌다는 사실도 기가 막혔다.
인수는 휴대전화기를 접어 주머니에 넣고, 두 손으로 얼굴을 비비고, 크게 심호흡을 한 다음
공연장으로 들어갔다. 빈 객석을 앞에 두고 무대에서는 조명기 설치 작업이 한창이었다. 광일과
인사만 나눈 후 인수는 박스에서 조명기를 꺼내 무대로 옮기고, 캐드로 트라스 위로 올라가
조명기를 달았다.
그 일이라도 해야 했다. 몸을 바쁘게 움직여야 회오리치는 생각이 멎을 것 같았다. 인수는
철골 구조물 위를 거침없이 걸어다니며 조명기들을 달고 디자인 프로그램에 따라 조명기 앞에
각각 필터를 꽂았다. 그러나 손금처럼 손에 익은 일이기 때문일까, 아무리 일에 몰두하려 해도
몸 따로 생각 따로였다. 뒤늦게 아주 많은 것들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수진이 여름휴가를 3일이나 4일만 사용했던 진정한 이유도 그제야 이해되었다. 회사 일이
많아서, 회사가 직원들 능력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쥐어짜려 한다던 과장된 불만은 방패였을 것이다.
그렇게 아껴둔 나머지 휴가를 가을이나 겨울쯤에 다른 사람과 사용했을 것이다.
가장 밑바닥의 신뢰가 무너지자 모든 것이 의심스러웠다. 잦은 야근에도 다른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인테리어 작업이라는 게 클라이언트의 요청에 맞추어야 하는 일이고, 현장 작업에는 변수가 많아서
야근이 잦을 수밖에 없다고 했던 말 역시 거짓이었을 것이다. 수진의 폭넓은 인간관계도 의심스러웠다.
친구의 결혼식, 동창 아들의 돌잔치 등 지인들의 경조사에 꼬박꼬박 참석했던 것도 그 일을
밀회를 가리는 휘장쯤으로 사용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뒤늦게 발등을 찍힌 기분이었다. 인수는 수진의 삶이 일과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상태를 다행으로
여겼다. 조명 오퍼레이터라는 직업이 밤에 작업하고 새벽에 귀가하는 일이기 때문에 수진이
혼자 보내야 하는 밤이 염려스러웠다. 지방 공연도 많아서 한 달에 절반쯤 집을 비우기 때문에
그 사실을 늘 미안해했다. 그런데.......... 인수는 삶 전체가 조롱당하고 모욕당한 기분이었다.
조명기 설치 작업이 끝나고 트라스를 무대 위쪽으로 올리는 일이 남아 있었다. 인수는 트라스
업체 직원들과 함께 부스에서 무대를 바라보며, 무대 옆에 서 있는 트라스 업체 감독관에게
신호를 보냈다. 감독관이 버튼을 누르자 거대한 철골 구조물이 장중한 기계음을 내면서 천장
쪽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무수히 많은 조명기를 매단 철골 구조물은 천장 가까이 올라가서
작동을 멈추었다. 감독관은 인수네가 서 있는 부스 쪽으로 다가와 트라스를 조망했다. 인수는
트라스를 조금만 더 올려달라고 부탁했다.
" 더는 안 돼요. 조금만 더 올라가면 트라스가 천장에 닿아요."
" 1 미터 정도만 더 올려줘요. 그 정도는 괜찮아 보이는데요."
감독관은 새삼스러운 낯빛으로 인수를 돌아보았다. 인수는 그의 시선을 외면한 채 정면만
응시하고 있었다.
" 그 정도도 위험해요. 잘 아는 사람이 왜 그래요?"
인수는 자신이 고집을 부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자기주장을 관철시키고 싶은 마음, 누구도 자신의 의견을 무시하지 못하게 만들고 싶다는
오기 같은 것이 마음속에서 푸르게 자라고 있었다.
" 1 미터 차이 때문에 그림자가 달라질 수도 있어요. 내가 책임질게요."
트라스 감독관은 잠시 망설이는 기색이었다. 인수는 그가 자신의 청을 거절해주기를 바랐다.
누군가가 서슬 푸르게 솟구치는 내면의 기운들을 단칼에 꺾어주었으면 싶었다.
" 그럼, 딱 1 미터입니다. 더 이상은 안 됩니다."
감독관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무대 쪽으로 다가가 조심스럽게 버튼을 눌렀다. 트라스가 다시
기계음을 내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대에서도 객석에서도 긴장된 침묵이 흘렀다. 거의 1미터쯤
올라갔는가 싶을 때 갑자기 철골 구조물이 심하게 흔들렸다. 날카로운 파열음이 이어지면서
조명기 서너 대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무대 위에서 작업 중이던 직원들이 객석 쪽으로 뛰쳐나왔고,
무대 위에는 깨진 조명기와 유리 조각들이 흩어졌다. 그 모든 광경을 보면서도 인수는 아무
감각이 없었다. 멍한 상태로 단 하나만 생각하고 있었다. 기어이........... 내가 주변의 것들을
파괴하기 시작하는구나. 내면의 분노가 나 자신뿐 아니라 주변 사물들을 파괴하기 시작하는구나........
" 팀장님! "
광일이 큰 소리로 인수를 부르며 다가와 콘트롤 박스의 전원을 껐다. 무대 쪽에 있던 트라스
업체 감독관과 공연 기획사 사장도 인수를 향해 달려왔다. 뒤이어 인수의 회사 사장이 들어왔다.
인수는 그들에게 고루 미안하다고 말했다. 무어라 한바탕 퍼부을 듯하던 사람들도 인수의 낯빛을
보더니 조용해졌다.
" 이왕 터진 일 어쩌겠나, 더 큰 피해가 없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지."
" 그래요, 시간이 얼마 없으니 빨리 수습하자구요."
사람들이 다시 제 위치로 돌아가 무대 위의 사고 흔적을 정리하고 조명과 배선을 다시 하기 시작했다.
인수 곁에 서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사장이 낮게 말을 건넸다.
" 광일이한테 들었다. 집사람이 아직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고?"
인수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사장이라고는 해도 그 역시 조명 오퍼레이터 출신의 선배여서
개인 사정이나 현장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었다.
" 아무래도 당분간 일을 쉬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인수의 선배가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 넘어진 김에 쉬어 간다고, 이번 기회에 몸도 좀 추슬러."
사장은 인수의 어깨를 몇 차례 두드렸다. 인수는 사장에게만 인사한 후 공연장을 빠져나왔다.
걸을 때마다 바지 주머니 속에 든 수진의 휴대전화기가 허벅지에 닿았다. 인수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전화기를 쥐고 걸었다. 그대로 쓰레기통에 던져 넣든지, 변기에 넣고 물을 내리고
싶었다. 인수는 공연장 화장실로 들어가 세면대 앞에 섰다.
거울 안에 낯선 사내가 서 있었다. 이틀 전까지의 그 사람이 아니었다. 내명의 황량함이
배어 나와 낯빛이 초췌하고, 분노 때문에 눈꼬리가 올라가고, 배신감에 볼이 움푹 패인
사내가 거기 있었다. 그 사내는 인수를 노려보고 있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어 떠났다면, 차라리 그게 더 나았을 것이다. 다른 남자를 사랑하게
되었다면서 자신에게 소원한 태도를 보였다 해도 괜찮았을 것이다. 다른 사내와 여행을 떠나는
아침까지도 자신에게 그토록 다정했다는 사실을 인수는 견딜 수 없었다. " 나 없는 동안
바람피지 마 " 그 말이 떠오를 때마다 몸속의 피가 방향을 바꾸어 역류하는 것 같았다.
그 말을 할때 수진은 인수의 잠옷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날 수진의 손길은 더 부드럽고
과감했다.
인수는 세차게 고개를 저은 후 세면대의 찬물을 틀어 얼굴을 씻었다. 찬물이 얼굴에 닿자
어떤 경고처럼 목덜미 뒤쪽에서 정수리를 거쳐 콧날에 이르는 곳이 찌르르 울렸다. 거듭 낯을
씻으며 인수는 모든 것을 씻어내고 싶었다. 수진의 사고도, 지난 이틀간의 지옥도, 자신의
존재마저도.
세수를 끝내고 거울을 보자 얼굴이 온통 피빛이었다. 코피가 흐르고 있었다. 세수를 한 게
아니라 온 얼굴에 피칠을 한 셈이었다. 코피는 여전히 흐르고 있었다. 손바닥으로 닦아내고
닦아내도 거듭 흘러내리는 코피를 보면서 인수는 비로소 두려웠다. 삶의 바닥이 뒤엎어진 것과
같은 이 상태에서도 여전히 살아가야 하는 내일이, 그 다음날이 너무 많이 남아 있었다.
철자를 바르게 타이핑 하는게 참 어려운고다..ㅡㅡ;; ㅋ
쳇 용어를 쓰다보니.. 자판위로 올라간 손꾸락은
자꾸만 요상하게 적으려긔 해서뤼~~
계속 지우다가 볼일 다본다는....... ㅋ
참...친절한 외출이란걸 또 함 느끼는 유닠~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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